여행

詩-정영숙/낭송-김수미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톡톡 엔터를 쳤더니

컴퓨터에서 걸어 나온 
부스러기 생각들이 씩씩대며 
양쪽 발등이 팽팽하게 
공기를 불어 넣는다.

부스러기 생각들의 
현란한 몸짓에 

둥둥 떠오른 몸뚱어리 
애드벌룬 되어 20층 창문을 열고 
빌딩 숲으로 날아갔다.

빌딩 유리창에 걸터앉아 
속내를 구경하는데 

대낮에도 불 켜진 
시멘트 벽돌 안에 갇혀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전자 회로만 반짝거리는 
혈색 없는 사람들이 

현대인이란 
이름표를 붙이고 분주하다.

넥타이에 목이 졸린 사람들을 
고층 빌딩은 쏟아내고
발이 땅에 닫기도 전
앰뷸런스의 경적도 없이 
달려온 자동차는 현대인을 삼키고 
전자 회로 태우는 흔적을 남긴다.

문명의 찌꺼기 
슬금슬금 눈치 보더니

아스팔트 위를 기어서 
가로수를 탐하기 시작한다.

메스꺼운 가로수 
연방 수액을 빨아올려 
끄윽 산소를 토해내 보지만

고달픈 잎사귀 
바닥에 주저앉아
전사자의 뼈마디 
부서지는 소리를 낸다. 

빌딩 숲에 어둠이 둥지를 틀고
현대인 이름표는 셔터를 내린다.

애드벌룬 시멘트벽을 통과하는 
속 빈 바람 따라
마지막 엔터를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