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미의 소리샘

이름: 김수미

2014/5/31(토)

수필 - 사랑으로 배부르다.

사랑으로 배부르다

청유 (淸幽) 김수미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공부방의 유리문을 연다.
주방은 밥 준비로 분주하고 한쪽에선 책상이자 밥상인 교자상마다 옹기종기 아이들이 모여 앉아 있다. 아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아이들은 늘 배고프다. 사랑도 배고프고 관심도 배고프다.

우르르 몰려들어 품에 안기는 아이들.
한 녀석이 사슴 같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녀석에게 미소를 보낸다. 녀석은 뭔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는지 더욱 파고든다. 매주 보는 얼굴인데 아이들은 늘 새롭게 만나는 것처럼 반긴다. 이들은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이며 부모님이 한분 밖에 없고 다문화 가정이며 지체 장애와 박약아동이다.

20년 전에 선생님봉사자로 시작해서 한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일반 학생들의 위촉강사로 활동을 재개하면서 가슴속에 다시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맑은 눈의 아이들. 사회에서는 이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불량을 운운한다. 하지만, 정작, 불량은 사회인 것이다. 사랑과 배려가 다 자라기전에 사회의 관습이 제도가 아이들을 변화 시켜놓고 아이들을 꾸짖는다.

존경과 사랑을 배우는 가장 작은 사회인 가정, 그리고 개념과 가치관을 배우며 옳고 그름을 배우는 중간사회 학교. 그리고 세상을 배우며 삶을 개척하는 일반사회를 순차적으로 몸에 익히고 적응하는 것이 올바른 과정인데 급속도로 아이들을 성장시키려는 부모와 사회가 오히려 부작용을 만들어 낸 것이다. 심장이 만들어지고 손발이 만들어지고 형태가 갖춰줘야 움직일 수 있는 것인데 한쪽이 다 자라기전에 움직이려 들다보니 삐걱거림이 있는 것이다.

내가 앙증맞고 깜찍한 토끼 같은 아이들, 사슴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녀석들을 찾아오는 것은 이들의 갈증을 채우며 또한 나를 다시 되돌아보는 일인 것이다. 아이들은 이 밥상에서 공부를 하며 ‘배움’이라는 고픈 배를 채우고 밥을 먹으면서 몸의 허기를 채운다. 그리고 함께 교감하므로 ‘사랑’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다.

‘돌’ 이라는 주제로 짧은글을 지어보라고 하자 아이들이 조용히 글을 쓴다.
각자의 개성이 다양해서 욕을 잘하는 아이, 싸움을 잘하는 아이, 울기를 잘하는 아이, 비명을 잘 지르는 아이, 입을 꼭 다물고 말을 안 하려는 아이, 자신을 자해하는 아이 등등 다양한 아이들인데 글을 쓸 때는 열심이다.

처음 이 아이들과 만났을 때 사무실에서 원장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임 선생님들은 너무나 산만한 분위기와 수업도 제대로 안되고 아이들이 선생님을 괴롭게 함으로 선생님들이 견디지 못하고 나가셨다고 말씀하시며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알려달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처음 이 아이들을 만나 첫 수업을 진행하는데 두려움이나 걱정이 아니라 왠지 모르게 웃음이 먼저 나왔다.

아이들의 짓궂은 말썽이 너무나 귀여웠다. 아이들은 웃는 내가 이상한지 “선생님 왜 웃어요?”하며 도리어 묻는 것이다. “선생님이 왜 웃었는지 궁금하면 각자 준비된 종이에다 질문을 써서 줘볼래? 선생님이 눈 감고 뽑아서 뽑힌 질문에 답해줄게”했더니 요 녀석들이 서로 쓰겠다고 난리였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과 궁금한 것을 적었고 글을 잘 모르는 아이는 그림을 그려서 내게 주는 것이다. 눈을 감고 하나의 질문지를 뽑아서 열어보니 재용이라는 아이가 “왜 웃었는데요? 라고 썼다. 나는 ”너희들이 너무 귀여워서“ 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싱겁다는 듯이 ”에~~이~~“ 그런다. 나는 아이들의 질문지를 하나씩 열어보니 모두 같은 질문이었다. 재용이의 질문과 같은.........

아이들은 아이로 봐줄 때 자신을 내보인다. 아이인데 어른처럼 생각하고 책임을 물으며 야단하면 아이들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아이에 맞는 훈계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점차 거리를 가까이 하면서 친교를 하니 아이들이 도리어 내 걱정을 해준다. 아프지 마라. 밥은 꼭 먹어야한다. 차 조심해라. 나쁜 친구랑 다니지 마라. 등등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주는 이야기인데 깜찍한 요, 녀석들이 선생님인 나에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안다. 어느 것을 조심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에 선생님인 나를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주의 사항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니 내가 요 녀석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돌’이라는 주제로 짧은 글짓기 한 것을 내게 준다. ‘사람들은 돌이 안 아프다고 생각하고 던지고 발로 찬다. 돌도 아프다. 말을 못해서 소리를 치지 않는 것이다.’라고 쓴 것을 보면서 내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이 글을 쓴 아이의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솔직하고 순수하게 자신을 글로 표현한다. 나는 이 아이들의 글들을 하나씩 보면서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본다. 아이는 그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맘대로 하는 것 같다고 대답한다. 또 다른 아이는 ‘돌은 단단하다 그런데 돌은 깨뜨릴 수 있다. 깨뜨려야 예쁜 돌이 된다.’라고 썼다. 이유를 물으니 돌을 다듬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멋진 조각을 만들 수 있어서 그렇게 썼다고 한다.

아이들의 생각이 글로 나타나고 글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수줍어서 자신감이 부족해서 말로 이야기하고 설명을 유창하게 하지 못해도 자신을 표현할 방법만 있다면 아이들은 마음속에 상처를,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글을 잘 모아서 수업일지를 쓰고 아이들을 한 녀석씩 꼬~옥 안아 주었다. 참새처럼 “언제 또 와요?”를 외치며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아프지 않으면” 하고 대답하자 “아프지 마세요!”하며 목청껏 외친다.

나는 이 아이들이 있어서 참 좋다.

나는 아이들이 주는 사랑으로 배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