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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김수미 (dkaldp1004@hanmail.net)
2005/12/2(금) 17:08 (MSIE6.0,WindowsNT5.1,.NETCLR1.1.4322) 211.110.67.56 1280x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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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하던 날(수필) 김장하던 날(수필)
글/김수미
아침부터 서둘러서 장보기에 나섰다.
밤새 적어놓은 사야할 재료 메모지도 꼼꼼하게 챙기며
수능 끝낸 큰아들과 함께 차를 몰고 대형매장으로 향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사람들로 북적대고 전단지에 나온 것처럼 배추 한 포기에
400원대를 기대하며 줄을 서기에 나섰는데 이미 순번 표가 동이나고
애써 서둘렀던 마음은 서운함으로 가득하다.
발길을 돌려 일단 부재료들부터 가장 저렴하며 품질 좋은 것을 고르기로 했다.
요모조모 따지며 고르려니 만만찮았다.
큰아이는 "엄마 이렇게 꼭 김장할 필요가 있을까요?"하며 한숨을 쉬는 것이다.
나는 "얘는~김장은 일 년 양식이나 마찬가지야 얘!, 그리고 지난번 김치난리 때문에
애꿎은 서민들만 더 골병들었어. 배추값은 치솟고 그렇다고 농민들에게 고스란히
그 이익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사먹는 사람도 농사짓는 농민도 다들 고생만 하니
원...,쯪쯪..." 대답 하면서 나 또한 한숨이 나왔다.
배추는 3000원대를 오르락거리고, 나머지 양념들도 따라서 올라가 버리니
무엇을 먹고 살라는 건지 내심 마음이 씁쓸했다.
더욱 줄을 서서 무를 사려는데 새치기를 하며 달려드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아이 보기에도 안 좋지만 그래도 어르신이라 그냥 자리를 내드렸다.
내 차례가 되어서 무를 3다발 신청하고 받으려는데,
그 할아버지가 다시 나를 밀치더니
갑자기 내 것을 확 손으로 잡아 채는 것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 하며 속상해서 말하니 그 할아버지는 도리어
"몰!!!! 왜~!!!" 하며 버럭 소리를 치며 눈을 크게 부릅뜨신다.
판매직원도 그 할아버지 행동에 어이없어하며 "할아버지! 남들은 줄도 다들 서고 기다렸는데
할아버지는 줄도 안 서시고 그나마 아주머니께서 양보하셨는데 이제는 물건까지
빼앗으시면 되시겠어요? 다른 분들은 어떡하라고요. 이러시면 질서도 깨지고
혼란스러워집니다."하며 한마디를 하자,
도리어 "내가 몰! 니들은 물건이나 팔면 되는거야!
내가 좀 좋은 물건 가졌다고 니들이 어찌할건데!! "하시며 더욱 소란을 치셨다.
주변 사람들이 "어르신이 그러시면 안 되시죠! 아이들이 몰 보고 크겠어요! " 하시며
한 마디씩 하자 그 할아버지는 더 크게 소리를 치시는거다. "이것들이~!!"
그래서, 나는 " 휴...우...,할아버지... 그 물건 가지세요.
그리고, 그만 하시지요! 제가 다음 것 받을 테니까 그만하세요." 했더니,
그 할아버지는 얼른 무를 챙겨서 자리를 비키셨다.
그분이 가시고 다들 한마디씩 그분 뒷모습에 대고는 " 쯪쯪...,나이는 어디로 드셨기에
저렇게 안하무인이라냐" 하시며 내게 "아주머니가 그래도 착하네!" 하셨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모질어지고 난리인 것은 사는 게 힘들어져서
경제가 얼어서 그러겠거니 하고 마음을 다독여본다.
이것저것 메모지의 재료들을 지워가며 남은 재료를 사러 이번엔 재래시장을 찾아나섰다.
돌고 돌아 배추가 2000원이라는데 제법 속도 차고 배추포기도 커보였다.
투덕투덕한 손의 까칠해 보이시는 할아버지께서 배추를 팔고 계셨다.
"한동안은 대형할인매장으로 인해 재래시장이 많이 죽었지만, 다시 찾는 발길들이
많아져서 조금은 나아졌다오" 하시며 웃으시는 넉넉함에 조금 전 대형매장을 찾은
나 자신이 죄송스러웠다.
할아버지는 40포기를 담아주시며 작은 배추 3포기더 넣어주시더니 "이 작은 건
국 끓여 먹어도 보고, 쌈으로 드셔보시구려! 맛이 참 좋을 거요." 하시며
웃으셨다. 나는 "고맙습니다. 맛있게 잘 먹을게요." 하며 차에 실었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호떡을 파시는 할머님이 보여서 출출한 터에
잘됐다 싶어서 호떡을 2000원어치 샀다.
그리고,차에 오르려는데 문득 배추 파시던 시장 할아버지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내려 호떡 2000원어치를 담아달라고 해서 차를 돌려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아이가 "엄마 왜요? 아...,할아버지 드리려고 그러시는구나요" 하며
활짝 웃어 보인다. 나는 "응~ 따뜻할 때 드시라고 얼른 가야겠다." 하며
따라 웃었다. 시장에 도착해서 할아버지께 드리며 따뜻할 때 드시라고 했더니
무척 고마워하며 웃으신다.
나는 다시 인사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대형매장에서 뵈었던 할아버지와 재래시장에서 배추 파시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옹골진 마음보다 베푸는 넉넉함을 지니신 시장할아버지께 이 하루를 마음으로 감사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큰아이와 배추를 절이고 재료를 다듬으며 하루를 이야기했다.
작은 아이는 잔심부름으로 엄마를 돕고 남편은 밤새 배추 뒤집어 주느라 잠을 설쳤다.
다음날 아침,
다들 학교로 직장으로 보낸 뒤 배추 헹구어내고 채반에 물기 빼낸 뒤 채를 썬 무에
양념을 버무렸다. 코끝에 감겨드는 알싸한 양념 냄새에 집안이 김장분위기를 제법
내고 있었다.
어릴 적 어머니의 김장하시던 모습이 콧등을 시큰거리게 떠올랐다.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싸주시던 김장 쌈을 맛있게 받아먹으며 "매워~매워~"를
연방 외쳐대던 그 어린 소녀가 이제는 어머니의 손맛을 내겠다며 이렇게 김장을
하고 있으니...,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그때는 김장은 당연히 어머니가 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별로 힘들지도 않은 것처럼
생각했었는데, 내가 어른 되어 매년 김장을 할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김장하기 전부터
김장 끝날 때까지 온몸이 아프고 힘들며 허리가 무척 아프다는 것을 어른 된 다음에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그 힘든 것을 나는 그때는 왜 몰랐을까? 이렇게 힘든 걸 알았다면
따뜻한 말이라도 하고, 어린 작은 손으로 어깨와 허리라도 주물러드리고
두드려 드렸을것을...,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나왔다.
큰아이가 일찍 집으로 돌아와 눈이 발갛게
상기되어 훌쩍이는 나를 보더니, 놀라서 "엄마? 왜요? 어디 아파요? 무슨 일 있어요?"
하며 묻는다.
나는 "아니...,갑자기 외할머니 생각이나서...," 했더니, 아이가
" 에이...,엄마 놀랬잖아요." 하며 웃는다. 아이는 책가방 내려놓고 얼른 가서 씻더니
아예 반소매 티로 갈아입고 고무장갑을 끼고 다가앉는다.
'나는 어릴 적 왜 우리 큰아이처럼 어머니께 하지 못했을까.' 아이의 모습을 보며
더욱 친정어머니께 죄송스러워진다.
김장을 아이와 어렵게 다 끝내고 나니 시간은 오후 9시를 향해 있었다.
그렇게 서둘러서 했는데도...,
김장을 마치고, 씻고 뜨거운 방에 잠시 등을 대고 누우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어느결에 잠시 스르르 잠이 들고 흔들어 깨우는 손길에
눈을 뜨니 큰아이와 작은 아이가 저녁을 준비해 놓고 나를 깨운 것이다.
30분간의 짧은 꿀잠을 자고 나니 몸도 조금 가뿐해졌다.
아이가 김치찌개와 계란찜을 해놓고 막 버무린
김장 겉절이와 김장 쌈도 준비해서 상을 차려놓았다.
아이가 차려준 푸짐한 저녁식탁에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이 되어본다.
내게 이렇게 귀한 자녀와 감사한 식탁에 축복이 함께 하길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리고, 김장을 하면서 참 많은 소중한 것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감사했다.
" 하나님 늘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내게 귀한 자녀 주심과 사랑으로 가득히 채워진
이 식탁에서도 행복으로 함께 할 수 있음을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가정에 차가운 마음들을 풀어내 주시고 사랑으로 가득히 채워지길 기원합니다.
늘 모든 것을 주님께 영광 돌리오며 감사함으로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200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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